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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왜 하필 제주였을까

by 람이네 블로그 2026. 2. 18.

퇴사를 결심한 날,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그리고 제주를 떠날 마음을 가졌다. 왜 하필 제주였을까,

퇴사 후, 왜 하필 제주였을까
퇴사 후, 왜 하필 제주였을까

퇴사와 동시에 제주를 선택한 이유

퇴사를 결심한 건 거창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번아웃이 왔다고 말하면 맞는 말이지만, 사실은 조금 더 단순했다. 그냥, 더는 이 생활을 계속할 자신이 없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지하철에 몸을 싣고, 하루 종일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밤이 되어 집에 돌아오는 삶. 주말은 쉬기 위해 존재했지만, 쉬어도 회복되지 않았다. 월급은 통장에 찍혔지만, 마음은 점점 비어갔다.

어느 날 퇴근길, 휴대폰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이렇게 5년 더 살 수 있어?”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은 멈춰야 할 때’라는 생각이었다.
계획이 완벽하게 세워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 계획도 없어서 더 무서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직서를 냈다. 도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잠시 숨을 고르는 선택이었다.

퇴사 처리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뭐 할 건데?”

그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 지금의 나를 모르는 곳으로.’

 

왜 다른 도시가 아닌 제주였을까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는 막막했다. 강릉, 부산, 해외 한 달 살기까지 검색해봤다. 하지만 결국 내 검색창에 가장 많이 남아 있던 건 제주도였다.

제주는 이상하게도 ‘여행지’라기보다 ‘도피처’처럼 느껴졌다.
바다가 있고, 바람이 있고, 무엇보다 섬이라는 점이 마음을 끌었다. 육지와 떨어져 있다는 물리적인 거리감이 나를 현재의 삶과 분리해 줄 것 같았다.

비행기로 한 시간.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
해외처럼 완전히 낯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일상과 맞닿아 있지도 않은 곳. 딱 그 정도의 거리감이 필요했다.

또 하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였다.
제주에서는 굳이 뭔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바다를 걷고, 카페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는 하루도 괜찮을 것 같은 곳.

솔직히 말하면,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언어 장벽이 없고, 장기 숙소를 구하기 비교적 수월하고, 한 달 정도 머무르기에 정보가 많다는 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제주 한 달 살기’를 경험했고, 후기들도 넘쳐났다. 막연한 불안 대신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은 항공권을 결제하던 날이었다.
“정말 가는 거야?”
결제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 망설였지만, 카드 승인 문자가 오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는 고민이 아니라 준비의 단계였다.

 

한 달 살이를 준비하며 마주한 현실

퇴사는 감정의 영역이었지만, 한 달 살이는 철저히 현실의 영역이었다.
막연히 “가서 쉬자”는 생각만으로는 부족했다.

1) 예산 계산하기

가장 먼저 한 일은 통장 잔고를 보는 것이었다.
퇴직금, 마지막 월급, 비상금까지 모두 계산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쓸 수 있는 최대 예산을 정했다. 숙소비, 항공권, 식비, 렌트카 혹은 교통비, 카페비, 예상 못 한 지출까지.

생각보다 큰돈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소비’라기보다는 ‘시간을 사는 비용’처럼 느껴졌다.

2) 숙소 고르기

숙소는 가장 오래 고민한 부분이었다.
바다 근처에 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지만,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결국 나는 바다와 조금 떨어진 조용한 동네의 원룸을 선택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한 달을 살아야 하는 공간이니 편안함을 우선으로 했다.

옵션 체크도 꼼꼼히 했다.
세탁기 있는지, 난방은 어떤지, 마트와 버스 정류장은 가까운지. 여행이 아니라 ‘생활’이니까.

3) 짐 싸기

짐을 싸면서 깨달았다.
나는 생각보다 많은 물건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노트북, 몇 벌의 옷, 책 두 권, 운동화 한 켤레. 캐리어 하나에 인생을 잠시 압축해 넣었다.

가족 반응은 예상대로 반반이었다.
“그래도 젊을 때 해보고 싶은 건 해봐.”라는 응원도 있었고,
“괜히 시간 낭비하는 거 아니야?”라는 걱정도 있었다.

친구들은 부러워하면서도, 동시에 물었다.
“너 진짜 돌아올 거지?”

사실 나도 몰랐다.
한 달이 끝나면 다시 회사에 다닐지, 다른 길을 찾게 될지. 하지만 분명한 건 있었다. 지금 이 선택을 하지 않으면, 나는 계속 후회할 것 같았다.

 

퇴사는 끝이 아니라 잠시 멈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멈춤의 장소로 제주를 선택했다.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는 아니지만, 괜찮다.
이번 한 달은 ‘잘 사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나로 사는 법’을 다시 떠올리는 시간이 될 테니까.

비행기 출발 날짜가 하루씩 가까워진다.
조금은 두렵고, 많이 설렌다.

이제 정말, 떠날 시간이다. ✈️